국제관계분석

차문화의 이동 : 홍차 확산 배경과 아편전쟁 아삼차

기술1 2022. 12. 8. 16:48

우리가 현재 즐겨 먹는 차, 이것은 어디에서 유래되었을까요? 동양에서 차가 유래되었으며 이것이 서양에 퍼지면서 동양의 특산품으로 인식되어 유럽의 귀족들이 자신의 부를 상징하기 위해서 이 차를 즐겨 마셨는데요. 

 

그 배경은 기원전 2700년 경부터 중국에서 차를 마시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찻잎은 몸을 정화시키고 잠을 깨워주기 때문에 불교의 승려들이 즐겨 마시다가 중국에서 전역으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대항해 시대 때 차 문화의 전파 과정


15세기 말, 신대륙이 발견 되면서 본격적으로 대항해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포르투갈과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여러 나라들은 신대륙 뿐만 아니라 동양까지 뻗어나가 교역을 하게 되었는데요. 

 

항로를 개척하면서 동양 무역은 이전에는 실크로드로만 가능했던 향신료와 차, 비단, 도자기 같은 값비싼 물품들이 이제는 항로로 바로 들어오게 되면서 수입이 안정되었으며 이런 물품들은 초반기에는 귀족들의 부의 상징으려 여겨졌습니다.

 

궁정을 중심으로 차 문화는 전파되게 되었고 영국 궁정에서는 홍차가 큰 인기를 끌게 되면서 점차 기존에 즐겨 마시던 술을 대신해서 홍차를 마실 정도로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중국의 영국의 제한 무역 : 아편전쟁으로 번진 홍차의 열기


중국은 당시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국가와 교역에 있어서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는데요. 중국의 청 왕조는 1700년대에는 영국에 제한 무역을 진행하고 있었고 영국은 이로 인해 무역 적자를 맞았습니다.

 

중국에서 수입하는 상품은 비단, 도자기, 홍차 등 값이 비싼 물품이었는데 중국은 영국의 시계, 완구품, 면화 같이 싼 물건들만 사들였기 떄문에 계속해서 적자가 발생한 것입니다.

 

그래서 영국은 중국정부에게 자유무역과 무역항의 확대를 주장했지만 이는 거절당했고 이로 인해 영국은 대규모의 아편을 밀수출하여 중국의 사회 각층으로 아편이 퍼지게 만들며 아편전쟁은 시작되게 됩니다.

 

이로 인해 1839년 ~ 1942년 1차 아편전쟁, 1856 ~ 1860년 2차 아편전쟁 모두 중국은 패배하게 되고 이로 인해 중국은 무역항을 개방하게 되었으며 중국에는 아편이 쏟아져 들어오게 되며 사회적 폐단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차 재배 조건 및 인도의 아삼차


우리가 흔히 아는 차는 차나무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이는 섭씨 12~15도 강수량 1,300mm 이상의 지역에서만 재배되며 물론 이것이 절대적인 수치는 아니지만 해당 기온과 강수량이 적은 곳에는 품질이 좋지 않은 차가 생산됩니다.

 

이런 환경은 중국이 완벽한 조건을 차지하였기에 중국에서 많이 재배되었고 영국과 다른 나라들도 차를 재배하려고 했지만 번번히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인도의 아삼차

영국은 당시 식민지였던 인도에도 차를 생산하기 위해 차나무의 신종 격인 아삼종이라는 것을 만들어냈는데요. 아삼종은 일년 내내 채엽이 가능하고 수확량도 높았기 때문에 이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등 많은 동남아 지역에 확산되게 되었습니다. 


스리랑카의 차 산업

현재 차 산업에서 홍차는 인도, 케냐에 이어 세계 3위의 홍차 생산국인 스리랑카입니다.

 

스리랑카에서 생산되는 홍차의 95%는 외국으로 수출되며 스리랑카는 네덜란드의 통치를 받던 시점에서 영국의 식민지가 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대규모의 홍차 산업이 시작되게 된 것입니다. 

 

현재도 스리랑카에서 홍차 산업은 주요 산업으로 자리잡아 있으며 대규모의 플랜테이션이 있기에 당시 식민지배의 상황에서 값이 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생산해 내면서 홍차의 대중화가 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