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의 정치 및 통치 구조
- 공식명칭 : 미얀마 연방 공화국
- 1947년 미얀마의 첫 헌법 체택
- 1962년 쿠데타 발생
- 1974년 제 2차 헌법 제정
- 1975년 ~ 2008년 : 군부 독재 시절 (군임명직, 의석 25% 군대 장교 임명)
- 2021 ~ 현재 총리: 민 아웅 흘라잉
- 장관 : 대통령이 임명 후 의회가 승인하는 방식
- 국가고문 : 아웅 산 수치 ( 군부 쿠데타 이후 가택연금 상태 명목상 )
- 약 40만의 승려가 있으며 이는 군인과 비슷한 숫자이다. 승려는 종교 지도자로서 미얀마에서 매우 종경 받는 직책이다.
- 민족 무장 단체(EAO) : 미얀마에는 많은 소수 민족 무장 단체가 존재한다. 인종 동맹을 구축하는 방법과 국가와 참여하는 방법을 추구한다.
미얀마 로힝야족 학살 사건
로힝야족은 뱅골인으로 분류되며 고유한 방언을 사용하는 민족입니다. 약 100만명이 존재하는 소수 민족 중 하나이며 무슬림 계에서는 미얀마 중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로힝야족이 이렇게 학살 된 이유는 종교적 측면이 있는데요.
불교 국가였던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족에 대한 시민권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2014년에서는 인구조사에서마저 제외해버리기 시작합니다. 그들을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민자들로 대하며 자신의 국민으로 여기지 않은 것인데요.
그러다보니 2017년 로힝야족의 무장단체인 로힝야족 구원군(ARSA)는 미얀마 지역의 보안군을 공격하면서 약 70만명으로 추산되는 로힝야족이 피난을 가기 시작했습니다.
직접적인 배경이 되었던 사건은 바로 2012년 발생한 대규모 분쟁입니다. 로힝야족 3명의 남성이 라카인족 여성 1명을 강도살해한 사건으로 인해 라카인족은 보복으로 로힝야족의 버스를 공격했고 로힝야족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라카인족의 마을을 습격했습니다.
극단적인 로힝야족 인물이 라카인족의 불교계 승려들이 탁발을 하는 도중 습격해 참수시키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면서 불교계까지 지지하면서 계속해서 갈등이 지속되었다가 정부군까지 합세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서 로힝야족의 차별 정책이 시작되고 로힝야족의 반군의 공격으로 국경 시설물과 경비대원이 사살되자 정부군과 불교 극단주의자들이 합쳐 로힝야족을 탄압하면서 이는 미얀마 군부로부터 소탕작전으로 바뀌게 되고 민간인 수천명의 로힝야족이 살해되었습니다.
2019년 OIC(이슬람 국가기구)가 미얀마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노사이드 범죄에 제소하면서 로힝야족 민간인 집단 학살에 대한 내용이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아웅산 수치 로힝야족 학살 방관 논란
아웅산수치는 국부인 아웅산의 딸로서 노벨평화상을 받고 2010년대 후반까지 미얀마의 실질적인 통치자로 자리잡은 인물입니다. 아웅산수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성 인물인데 지금 미얀마의 벌어진 로힝야족 학살 사건에 대해 방관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반론도 존재합니다. 현재 미얀마의 국민 여론은 거의 95% 이상 가까이 로힝야족에 대한 반발심을 가지고 있을 만큼 반대 여론이 거세기 때문에 미얀마 정치인들 중에서는 섣불리 로힝야족에 대한 지지의견을 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지지를 할 경우 곧바로 자신의 표를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웅산수치가 실질적인 통치자로 자리잡고 있을 때도 군부의 힘은 막강했습니다. 만약 군부와 다른 의견을 낼 시 아웅산수치는 바로 쿠데타로 정치적 지위를 잃게 될 것이기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긴 합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입장에서는 노벨평화상을 받은 아웅산 수치로서 행보는 조금 아쉽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로힝야족 반군(ARSA)가 경찰을 습격하자 미얀마군은 대규모 병력으로 소탕 작전을 펼치던 도중 로힝야족 민간인 학살이 발생했으며 최소 이는 수천명의 사람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유엔은 이것을 명백한 인종 청소로 규정하고 학살을 주도한 미얀마 장성의 처벌을 촉구하고 있는데요.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족 학살을 인정했지만 유엔의 조사에 협조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국제적인 지지를 받는 아웅 산 수치는 이런 학살에 대해 소극적인 역할을 하는데요. 당시 이 사건에 대해서 계속해서 애매한 입장을 취해오면서 군부와 타협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현재로서는 쿠데타로 인해 연금 조치를 당한 아웅산 수치,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치 인사로서 해당 사건에 대해서 조금은 더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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